아름다운동행

나는 아빠가 미웠었다

뉴
뉴딜
2023.01.05 00:41 | 조회 3.3k

나는 아빠가 미웠었다.

어릴때부터 아빠랑 엄마는 싸움이 잦았다.

​

아빠는 어릴때부터 고생을 많이하고

그걸 다 이겨내고 자수성가한 사람이었고

​

엄마는 온실속의 화초처럼 사랑받고 살아온

막내딸이었다.

​

그런 엄마는 아빠를 만나서 너무 많이 고생했고

아빠는 사랑받고 자라온적이 없어서

그 흔한 고맙다는 말도 잘하지 않는 사람이었다.

​

그렇다고 아빠가 술을 먹거나 딴짓을 하거나

한 그런 사람은 아니였고

사회생활 열심히해서 자식들을 위해

열심히 살아왔지만 다정하지않고 가부장적인

그 시대의 아빠셨다.

​

자식에게 살갑게 대하지는 않았지만

힘들때는 늘 옆에서 아빠가 있으니 걱정하지말라고

지지해주는 강한 아버지셨다.

​

하지만 엄마가 아빠의 폐암 병간호하면서

스트레스로 우울증도 걸리고

그 이후에 난소암까지 걸려서

난 아빠를 정말 미워했었다.

​

아빠때문에 엄마가 병에 걸린거라고

모진말도 많이 했다.

​

그리고 엄마가 난소암에 걸린 해에

아빠는 폐암 전이가 되었고

나는 엄마 아빠 근처에 신혼집을 꾸리고

매일 엄마 아빠를 신경쓰며 살았다.

​

그리고 그 다음해에

나는 엄마가 바라던 임신을 해서 아이를 낳았고

산후조리원에 있을때

엄마가 난소암이 온몸에 전이되서

이제 손쓸수없는 단계에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.

​

그때도 난 아빠를 정말 원망했다.

왜 미리 얘기하지않아서

엄마 모시고 살지도 못하게 했는지...

​

엄마는 내가 임신하지못할까봐

일부러 전이사실을 안알린것이었다.

그래도 아빠는 알려줬어야했다고 원망했다.

​

삼성병원에서 엄마 여명이 3개월 남았다는 말을 할때도

아빠가 먼저 장례식장 준비를 하라느니

영정사진을 준비하라느니 얘기해서

아빠가 참 매정하고 끝까지 엄마 생각은 안하는

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.

​

아빠가 엄마를 억지로 운동시키고

엄마 체력은 생각않하고 자기 멋대로 엄마를 힘들게해서

엄마가 더 빨리 갔다고만 생각했다.

​

그리고 엄마가 돌아가신 후

그렇게 미워한 아빠지만

아빠마저 돌아가실까봐 아빠한테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.

​

하지만 미움이 쌓이니

잘하다가도 화가나고

엄마가 받아야할 효도를 왜 아빠한테 하고 있나

내 자신에게 화가 날때가 많았다.

​

그래서 아빠한테도

내가 언제까지 이래야하냐고

아빠때문에 엄마 돌아가신거라고

화낸적도 많았다.

​

그래도 어린 쌍둥이 키우면서도

아빠까지 잃지않기위해 아니 아빠 가실때 후회하지 않기위해

주 3회는 아빠 밥 차리고

명절이나 행사있을때마다

상다리 뿌러지게 차려드리고

아이들 시댁에 맡기고 아빠랑 여행도 다녔다.

​

아빠를 미워하면서도

아빠한테는 나밖에 없다는 동정심때문에

나는 효녀니까 아빠한테 잘해야한다는 의무감때문에

아빠한테 잘했다.

그러면서도 아빠때문에 내가 행복하지 못하다고

아빠를 미워했다.

​

아빠도 내 맘을 다 아셨지만

너 아니면 누가 하냐고 말하실때마다 더 화가 났었다.

​

4년을 그렇게 아빠 집 근처에서

아빠가 코로나 걸리거나 폐렴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

사람 만나는것도 못하게 하고

우리 애들도 감기걸려오면

아빠 근처에도 못가게 철저하게 관리했다.

​

그리고 올해 9월

아빠가 갑자기 숨차하시고 힘들어하셔서

응급실에 갔었고

아빠가 기적적으로 퇴원할수있었다.

​

그때 오빠가

자기집 근처에 시설좋은 암 요양병원이 있으니

거기에 모시면서

자기가 병원도 모시고 가고 신경쓰겠다고 했다.

​

그곳은 우리집에서 왕복 4시간 걸리는 곳이라

아이들 유치원 등원시키고 갔다가

하원시킬 시간에 맞춰서 와야했기에

일주일에 한번 겨우 5~10분 아빠를 볼 수 있었다.

​

아빠는 그곳에서 친구들도 사귀고

그렇게 가고싶었지만 코로나때문에 못간

교회도 갈수있었다.

아빠도 거기서 영양제맞으며

몸도 더 좋아지는것같았고

나도 아빠 간병의 책임감에서 벗어나서

편하게 생활할수있었다.

​

그러면서 나도 우리 애들한테 집중하면서

아빠는 잘 있겠지하며 의무적으로 하루에 10분정도

통화하는것만 했었다.

​

그러는 동안 11월에 아빠는 삼성병원 진료를 보러가서

코로나에 걸렸다.

암요양병원에서는 그냥 쓰던 병실을 독실로 한채

거기서 격리하시라고 했고

증상에 맞는 약을 처방해준다고 했다.

​

하필 아빠가 먹고있는 타그리소가 팍스로비드와 같이

복용하면 안된다고 해서

아빠는 염증수치도 높지않았고 열도 안나서

몇일 감기약만 먹고 격리해제되었다.

아빠도 딱히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고 했고

약간의 기침만 나온다고 하셔서 괜찮다고 여겼다

​

그리고는 갑자기 피가래와 노란가래가 나온다고

잘 드시고 있던 만성폐쇄성폐질환 약을 끊어버리셨다.

약을 끊으니 피가래가 멈췄다면서

​

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아빠 호흡이

안좋아지셨던것같다.

​

오빠한테도 아빠가 숨쉬는게 좀 힘들어보인다고 했는데

요양병원 피검사 수치상

염증도 높지않고 괜찮다고 했다고 했고

아빠도 자꾸 병원가니 힘들다고 했다고

2주후에 있을 호흡기내과 진료에서 보자고 했다.

​

나도 아이들 등하원 시간때문에

가도 잠깐 뵈었던거고

그날 잠을 못자 컨디션이 안좋아서 그런거라는

아빠 말에 그런가보다 해버렸다.

​

그리고 호흡기내과 진료 하루 전날

아빠는 쓰러지시고

지금까지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계신다.

의사는 살 가능성이 없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.

​

아빠가 쓰러진후

왜 오빠는 아빠모시고 x레이라도 찍어보라는 말을

무시했는지 화가 났고

그보다 내가 가래얘기를 듣고

왜 바로 병원에 모시지 않고 넘겼을까 후회가 되었다.

내가 아빠 퇴원할때 요양병원에 보내지말고

우리 집에 모실껄 그랬나 너무 후회도 됐다.

자기가 잘 모실테니 아빠 신경쓰지말라고 했던

오빠를 믿은것도 너무 후회가 됐다.

그냥 내가 할껄

​

그런데 생각해보니

요양병원있을때 아빠는 행복해보였다.

​

아빠는 사람만나는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.

그런데 코로나로 3년간 사람도 못만나고

유일하게 만난 사람이 나였어서

올해는 우울증처럼 이렇게 살아서 뭐하냐는 말까지 하셨다.

나도 4년간 그런 얘기를 들어서인지

그만 좀 하라고 했었다.

생각해보니 일주일에 나랑 밥먹는 2~3일

1~2시간을 제외하고는

아빠는 누구하고도 얘기하지 않고 지냈다.

​

하지만 요양병원에서는

몇시간을 다른 환자들과 수다떠느라

내 전화도 안받았다.

집에 있을때는 전화벨 울리자마자 받으셨었는데...

​

밥도 내가 해준것보다

더 환자식으로 입에 맞아서

잘 드셨다고 했다.

​

응급실에서 퇴원하고 내가 모셨으면

아빠는 지금도 살아계실텐데

라고 생각한건

내 집착이고 내 오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.

​

나랑 있었으면

더 우울해하셨을테니까

​

하나님께서 아빠에게

천국가기전에 이 땅에서 즐겁게 지내라고 주신

보너스 3개월이었다는 생각도 든다.

​

나랑 얘기할때는 항상

건강한 니가 뭘 아냐?

한입이라도 더 드시라고 하면

나도 먹고싶다. 근데 안되는걸 어떡해하냐고

답답해하셨다.

​

하지만 요양병원에서는

같은 환자들이라 공감대가 형성되서인지

얘기하는게 즐거우셨던것같다.

엄마랑 같이 얘기하며 옥신각신한게 좋았다고 한것처럼

혼자 있을때보다 그 사람들과 얘기나누면서 지내는 시간이

행복하셨던것 같다.

​

아빠는 폐렴으로 쓰러진 그날 새벽,

옆에 있던 환자가 쓰러진 아빠를 발견해서

간호실에 연락해 빨리 조치를 취해

심정지전에 병원에 실려오셨다.

​

아빠 입장에서는 병원에 실려오기전에

거기서 바로 천국에 가셨다면 더 편안히 가셨겠지만

우리가 아쉬워할까봐 잠깐의 시간을 주셨다.

​

이젠 마음의 준비를 하며 보내드리려고 한다.

너무 갑자기 아빠가 쓰러지셔서 우리도 모르게

기도삽관을 해달라고 했지만

아빠의 평소 말씀에 따라

다음수순인 기관절개는 거부할꺼고

다시 기관삽관이나 심폐소생술 같은 연명치료는

하지않기로 했다.

​

아빠가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면 좋겠지만

아빠가 그렇지못하다면

의식없이 고통없이 편안하게 가셨으면 좋겠다.

​

이젠 아빠 마음을 조금은 알것같다.

엄마가 아플때 왜 나한테 전이된거 얘기를 안하셨는지

왜 아빠가 엄마 장례준비를 미리 했는지

엄마가 힘들어도 왜 그렇게 운동시키려고 했는지

그리고 내가 그렇게 원망했는데도

그래도 니가 해야지 누가하냐고 말했는지

그리고 나한테 고맙다고 한 그 말이 진심이었던것도

​

요양병원에서 나오는 과일이 많다고

못먹고 버리기 아깝다며

매주 올때마다 바리바리 싸준것도

표현은 못했지만 다 아빠가 가족을 사랑해서였음을

​

미안해 아빠

고마워 아빠

사랑해 아빠

​

다시 건강히 깨어나줬으면 좋겠어.

하지만 그게 힘들다면 내 욕심이라면

아프지않고 엄마가 있는 천국으로 편안하게 가세요.

​

​

Naver
목록으로

댓글

30
로그인 하고 댓글을 남겨보세요