아름다운동행

(6) 항암은 고독을 편안하게

딸
딸기맘l위본
2024.02.23 08:56 | 조회 1.2k

​

출산 후, 반 년도 채 안돼서 한 전신마취.

깨어났을 때,

내 팔과 다리는 내 것이 아니었다.

정말 팔 다리에 전기가 통하는 듯

찌릿찌릿 저려서 참을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.

팔은 아빠가.. 다리는 남편이..

두 세시간은 주무른 것 같다.

몽롱한 상태에서 식구의 얼굴을 봤는데

괜찮았다.

그 얼굴들로 알 수 있었다.

나 괜찮구나..

​

그리고 교수님이 말씀하셨던

테이블데스(table death) 2%

그 확률은 안 걸렸구나..

​

교수님이 오셨다.

다행히 전절제를 안하고

위에 윗부분 1/3은 남겼다고

그러나 밑에 음식 조절하는 유문이 없어서

고생은 좀 할거라고..

​

두 말 할 나위 없이 너무 감사했다.

그래도 나에게 위가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니까..

없는 것보다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.

​

수술 후 입원일 수 5일..

5일 동안 여일곱번의 ‘code blue’

그 때마다 내가 숨쉴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꼈다.

​

퇴원을 하고는 신기했다.

밥을 먹으면 5분 안에 화장실을 가서

내가 먹은 걸 바로 확인 할 수 있었다.

그제야 나는 내 안에 위가 없음을 인지한 듯 했다.

화가 났다.

어차피 그냥 나오는 음식인데 하며

먹고 싶은 걸 막 먹기도 했다.

때론 그냥 올라오더라..구토도 했다.

​

며칠 후,

친구에게 전화가 왔다.

‘괜찮아?’

‘응..이제 괜찮아지겠지..좀 지나야 익숙해진데’

친구는 말이 없었다.

‘여보세요? 혜연아!’하는데..

울먹이며..’다행이다..’

‘나 전화도 못하고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고

이렇게 통화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

심지어 나한테 수술잘받고 다시 와줘서 고맙다고..’

나한테 목놓아 우는게 아닌가..

사랑스런 내 친구가!

​

내 절친인 이 친구는 영양사이다.

친구는 알고 있었다.

위의 아랫부분에 있는 유문이 없으면

음식양 조절을 하는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

정말 천천히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.

그리고 단백질을 자주 먹어야 한다고.

그러나 내 주위 친정부모님을 포함해서

모든 사람들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관심조차 없었다.

위암은 그냥 수술 받은 걸로 끝나는 줄 아는 듯 했다.

그렇다고 난 아픈 걸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.

아프다고..불편하다고 하는 걸..

그 누가 좋아하겠는가?

듣기 좋은 소리도 한 두번이지..

심지어 아프단 소리! 하고 싶지 않았다.

​

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병원을 갔다.

종양내과!

종양내과 교수님은 수술한 교수님이 아니다.

암 조직검사 결과 내 암의 종류가 악성이라고.

영화배우 고 장진영의 암세포와 동일하다고.

발견이 가장 늦게 되는 악성인데 어떻게 발견했냐고.

그랬다!

다행히 위염이 심해서 발견된 것이었다.

임신중 둘째가 입덧을 하게 해줘서..

위염이 심해져서..

발견될 수 있었던 것이다.

​

다행인 건 맞는데 항암은 해야 한단다.

요즘 항암치료제가 좋아져서 머리는 안 빠진단다.

경구약으로 2주 먹고 1주 쉬는 형태로 10개월을 해야 한다고 했다.

위암2기라서 전이의 위험성이 있어서

반드시 해야 한다고.

​

항암의 부작용을 듣고 싸인하고 약을 받아서

집에 왔다.

약의 부작용은 심했다.

메스꺼움, 어지러움은 정말 심했고

못 먹어서인지..바로 싸 버려서인지..

몸에 기운이라곤 남아 있지 않았다.

​

그리고 머리카락..

안 빠진다고 말한 사람을 찾아가 때리고 싶었다.

출산 후라서 인지..항암약 때문인지..모르겠지만

머리를 감을때마다 한 움큼씩 빠졌으며

암환자라는 걸 상기시켜 줬다.

​

그렇게 한 차례의 항암이 끝나고..

아무도 나의 항암에는 관심이 없고..

힘들다는 말을, 아프다는 말을 하기도 싫고..

​

또 두번째의 항암이 시작되었다.

둘째딸은 수술직후

이미 엄마가 항암때까지 키워주시기로 하고

데리고 가신 상황이었다.

이번에는 더 힘들었다.

가만히 누워있는데

뇌가 움직이지 않음을 느낄정도..

첫째 어린이집에 딸 데리러 가야 하는데

바지를 갈아입을때

다리를 바지 통에 넣어야 하는데

다리가 안들어져서

한 쪽 팔로는 의자를 짚고

한 쪽 팔로는 다리를 들어서

바지 통에 다리를 넣었다.

뇌에 힘이 남아있었다면..욕을 했을 것이다.

​

첫째는 구강기가 끝났는데도

아직 무언가를 입에 넣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.

내가 침대에 누워있는데

첫째가 먼지 가득한 무언가를 빨고 있었다.

난 눈을 감았다.

고개를 돌리고 싶었으나

고개를 돌릴..그 조차의 힘도 없었다.

​

내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이겠다고

빨고 삶고 소독하고 하던 내가 아니었다.

​

난 물먹은 오징어가 된 기분이었다.

몸은 움직이지를 않았고

침대에서 일어나기 위해 팔을 짚을 힘조차 없었다.

가끔 참기 힘든 두통과 메스꺼움에

길건너 내과에서 수액을 맞고..

​

너무 못 먹어서인지..

항암약 때문인지..

세 살배기 딸이 엄마를 부르는데

대답도 하지 못했다.

​

자고 일어나 정신을 차린 다음날,

딸 얼굴을 보는데..그 때 알았다.

인간의 본성을..

내가 아프니까 딸이 안보이더라..

​

그렇게 또 한번의 항암이 끝나고

또 다시 시작된 항암..

적응이 된 것일까?

마냥 혼자 누워있는 게 제일 편했다.

어줍잖은 위로에 밸이 꼬이기도 했다.

말하고 싶지 않았다.

내 영혼은 너덜너덜 해졌다.

생각이 나면 나는 데로..

눈물이 흐르면 흐르는 데로..

​

멍~

공상~

사유~

그때의 고독들이..

지금의 글을 쓰는 힘이 된 것일까?

​

[다음편에 계속..]

​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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